하동칼럼

상실에 대한 준비 - 심홍규 웰다잉전문강사

하동신문 0 71

상실에 대한 준비                                       

심홍규 웰다잉전문강사

 

장자의 아내가 죽자 친구인 혜시(惠施)가 위로하러 장자를 찾아왔다. 뜻밖에 장자는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깜짝 놀란 혜시가 자초지종을 묻자 장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내는 본디 생명도 형체도 없었다네. 그 뒤 언젠가 양기와 음기가 모여 형체가 되고 생명이 되어 생겨난 것이지. 지금 아내는 생명이 죽음으로 변한 것뿐이라네. 마치 사계절의 순환과 같다고나 할까. 아내는 태어난 곳에서 편히 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네.”

 설 연휴 동안 모처럼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각자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다. 

가족들과 헤어지면서 작별의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이보다 더 큰 이별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공리(公理)이다.

다가오고 있는 그 이별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한다.

 현대의 인간 수명은 날로 길어지고 있다.

문제는 길어진 삶으로 인해 청년기나 장년기가 늘어났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조금 늘어난 부분도 있지만 결국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는 것은 노년의 삶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년의 삶이 늘어나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에 따른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노년기의 삶은 생각하기에 따라 피곤하기도 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노년이 되면 죽음에 이르게 될 시간이 가까워 온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보는 생각이 달라진다.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년에는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돌아보고 남아있는 삶의 소중함을 알아 마지막 생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정리를 하는 자세가 필요 하게 된다. 그저 나이만 탓하며 우물쭈물하다 보면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가버린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고 죽음은 새로운 삶을 의미 하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사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을 비통하게 만들거나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유한함을 깨닫게 되면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삶의 유한성을 알고 나면 남아있는 시간과 생명이 귀중하게 생각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남은 시간의 귀함을 더욱 절실하게 인식하게 된다.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환희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행복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우리는 한 평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상자에 눕기 위해 그렇게 처절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은 사람 때문에 우는 것도 중요 하지만 산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삶이 차곡차곡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처럼 모든 변화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보태져 이루어지는 법이다. 죽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잘 사는 게 더 어렵고 힘든 것이다.

 퇴직, 이별, 늙음, 죽음, 상실은 언제나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영원히 오지 않을 것처럼 착각할 뿐이지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세상에 내 것이라고 할 것도 없고 종국에는 나라고 할 것도 없다. 우주의 큰 공간과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시간의 입장에서 보면 잠시 어느 곳에 머물렀다 가는 것일 뿐이다. 하물며 살아가면서 가졌던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무슨 큰 일이겠는가? 

 작은 상실이 왔을 때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상실이던 수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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