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장례문화 속에 숨어있는 일제잔재 - 심홍규 웰다잉 전문강사

하동신문 0 343

장례문화 속에 숨어있는 일제잔재      

심홍규 웰다잉 전문강사

 

 순종황제 국장에서 영좌 주변에 길게 여러 줄로 놓인 국화 화환을 불 수 있다.

한국 전통은 상여를 장식하는 종이꽃 수파련(水波蓮) 말고는 초상집에서 실제 꽃을 사용하지 않았다.

관혼상제 등 일제의 통과의례 문화이식과 강요는 귀신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귀신도 식민지 백성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1924년 영화 장화홍련전 에서는 소복여부를 알 수 없으나 문 예봉이 주연한 1936년 장화홍련전은 흑백사진을 봤을 때 소복보다는 녹의홍상으로 추측하고 있다. 1972년 장화홍련전은 칼러 사진과 영상이 남아있는데 명백히 소복을 입고 있으며 그보다 앞서 유명한 월하의 공동묘지 (1967년) 주인공은 소복차림으로 공동묘지에 나타나고 있다. 장소와 옷이 두루 식민지시기에 형성된 이미지인 것이다.

일제에 의해 변신을 요구 받았던 그 귀신은 지금도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전통귀신으로 판을 치고 있다. 소복 유령화의 기원은 에도시대 마루야마 오코(圓山 應擧)로 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통 도깨비 이야기와 이미지 또한 상당 부분 일본 오니 설화에서 왔다. 혹부리영감 이야기는 총독부 교과서에 실리면서 한국 민담으로 둔갑을 했다.

가정의례라는 용어가 처음 나온 것은 1934년 11월10일 제정 공포한 우가키 가스시게 총독의 의례준칙(儀禮 準則)이었다.  준칙은 신사에서 혼례를 올릴 수 있도록 했고 구악을 일소 하고 간소화 하도록 했다. 전통 절차와 문화는 악습이자 미신이라고 규정하여 타파 대상화 했다. 통과의례에서 죽음문화의 식민화는 한국인의 내세까지를 지배하는 데 목표를 둔 일상의 식민화의 전형이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흔히 사용하기에 이른 삼베수의, 상장(喪章), 완장 등의 근거들 또한 여기서 나오고 있다.

생활양식 중 각종 의례는 구태가 의연하여 오히려 개선할 여지가 적지 않다.

그중에 혼인 ,장례, 제사의 형식과 관례는 지나치게 번잡하여 엄숙하여야 할 의례도 종종 자질구레하기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마음을 쓰게 되어 그 정신을 망각하지 아니할까 우려될 정도에 이르렀다. 지금에 와서 이를 뜯어 고치지 않으면 민중의 피해를 예측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지방의 발전과 국력의 신장을 저해 하는 일이 실로 적지 않다.

한국수의는 대개 생전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입혔다. 관리는 관복, 선비는 유학자들이 입던 하얀 심의(深衣), 여성은 혼례복 등으로 입던 원삼 (녹의홍상)이었다. 천은 형편에 따라 비단, 명주, 무명이었다. 삼베옷은 상주가 죄인이라는 뜻으로 입는 옷이었다. 일제는 한국인이 죽어서 삼베옷을 입도록 했다.

“오죽하면 삼베수의랴” 라고 하던 문화와 전통은 일제에 의해 우리문화가 말살되고 삼베수의를 강요당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목숨 수(壽)자 수의의 목숨이 끊어진 게 이때다.

광복 뒤 한국의 대통령들까지 대부분 삼베수의를 입고 저승길을 떠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마저 삼베수의에 국화로 장식한 영좌에 갇혀 이승을 떠나야 했다.

한국인이 죽어 삼베를 입어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 편 것은 김숙당의 조선 재봉전서(朝鮮裁縫全書) (1925년) 이었다.

훗날 이광수도 여기에 가담 했다.

공동묘지라는 낱말이 처음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한국에서 그동안 사용해온 공동산은 도교적 의미이거나 북망산에 가까운 말 이었다. 일제가 이식한 공동묘지는 Mass grave(集團墓地)에서 추론 해낼 수 있는 의미와도 다르다.

공동묘지라는 이 낱말은 조성왕조 신록 전체에 단 1회도 등장하지 않은 낯선 신어였다.

그때부터 죽음은 삶에서 분리되어 도시 밖으로 추방되기 시작 했다.

식민지 도시의 문명화와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서 삶터에서 죽은 자들은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일제가 우리의 장례문화를 훼손함으로써 민족의 얼과 혼을 완전히 끊어버리려는 시도였고, 수탈을 목적으로 상 장례 문화를 왜곡한 것들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 조상님들 보기에도 부끄럽다. 장례에서 일제 잔재 청산은 일시적 구호에 따라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문화를 청산하기보다는 전통의 회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그 회복은 전통장례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현대화된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건 올해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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