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나의 묘비명, 무엇을 쓸 것인가 ? 웰다잉전문강사 심홍규

하동신문 0 161

 나의 묘비명, 무엇을 쓸 것인가 ? 

                                          웰다잉전문강사 심홍규

                       

 

“생각해 두신 묘비명 있으세요?” 라는 방송 프로를 시청한 적이 있다.

요즘 묘비명을 미리 적어보는 사람, 심지여 새파란 젊은 나이에 유서도 미리 작성해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묘비명이나 유서는 그 사람의 일생의 행적이고 삶에 대한 반성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작성 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작업과 같다고 한다.

묘비명이란 내가 죽은 후 남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에 대한 본인 스스로 또는 지인들의 표현이다. 

이 시대에 우리들이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듯이 지금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보다 앞서서 이 같은 고민을 해왔던 많은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 삶 자체를 한마디 언어로 모두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의 죽음이 묘비에 새겨질 때는 생전에 그가 추구한 가치관이나 그를 대표할 수 있는 상징으로 집약된다고 할 것이다. 

묘비명은 그 사람의 인생을 압축하는 한마디 말이다. 

자신의 희망과 목표를 반영한 묘비명은 진지하게 인생을 사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미리 쓰는 묘비명은 나에 대한 나의 냉정한 평가다. 

묘비명을 쓰려고 하면 매우 비장해질 것이다. 

“우물쭈물 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영국의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소설가였던 어니스트 훼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오.”라는 묘비명을 가지고 있다. 게일보든이란 발명가의 묘비명은 이렇다.“나는 시도하다 실패 했다. 그러나 다시 또 다시 시도해서 성공했다.” 사람은 저마다 후대의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묘비명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총체이자 기억이다. 자신의 묘비명은 어떻게 기록되기를 원하는가? “삶을 헛되이 살다 의미 없이 죽은 사람”이라고 기억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여기에 고귀하고 아름다운 섬김과 사랑을 실천한  ○○○가 잠들다.”라고 기록되길 원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현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지금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 나머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만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가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있다. 기억은 축적이다. 한 순간 한 순간의 촌음(寸陰)들이 모여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자신의 묘비명은 죽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쓰여 지고 있다. 

자신의 묘비명을 적어보자, 그리고 그대로 살아가기를 힘써 보자.

묘비명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보다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시간을 가지도록 한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의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자신에게 인생을 보는 통찰을 준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선인들이라면 이미 무덤에 들어갔을 나이에 다시 환갑의 나이만큼을 덤으로 더 살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 묘비명을 지어 후세에 남길 엄두를 낼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캄캄한 밤길을 지팡이를 두드려 가며 걷는 듯이 살다가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게 보편적인 우리네 인생이다. 죽음 앞에서 나는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까? 

생의 성적표인 가을을 맞이하여 자신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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