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호국의 달에 김종오 장군을 추모하다 여호영

하동신문 0 58

호국의 달에 김종오 장군을 추모하다

여호영

 

6.25 직전 한국군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나? 군 주요 지휘관들을 후방으로 교육명령을 내렸다. 1사단장 백선엽 장군은 시흥에서 교육받고 있었다. 일주일 전에는 전방 지휘관들 70% 이상을 인사이동 시켰다. 관할구역에 대한 지형지물을 습득할 시간도 없었다. 토요일에는 사병의 50%이상을 농번기 등을 이유로 휴가를 보냈다. 중화기 등 주요 장비들을 후방으로 보내 대 수리를 받도록 했다. 한달 전부터 유지해오던 비상경계를 해제하고 이틀 전에는 평상으로 전환했다. 전날 밤에는 육본 장교크럽 개관식을 성대하게 열었다. 수도권에 있는 육군 주요 지휘관들을 술에 떨어 지게 했다. 전면전 발발 당일 작전참모가 사는 동네로 헌병을 보냈다. 헌병은 확성기로 참모를 찾았다. 그래도 안 나타난다. 육본 작전참모는 간밤에 2차 갔다가 전면전 발발 후 6시간이 지나서야 연락이 되었다.

김종오는 달랐다. 단신에다 깡마른 체구에 어깨도 좁다. 김종오의 별 네 개를 어깨 위에 붙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별들이 서로 톱니바퀴 맞물려 있듯이 별의 끝 부분이 옆의 별 틈 사이로 들어 가도록 배열했다. 우리나라 사성 장군으로는 왜소하고 어깨도 좁은 가장 볼품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장군이다. 

김종오. 나이 30세에 대령으로 국군 6사단장을 맡고 있을 때 6.25를 맞는다. 6사단은 38선을 따라 춘천서 인제까지 90Km의 방어선을 책임지고 있다. 6월 28일 김일성군에 서울이 떨어지는 날도 김종오는 책임지역을 선방하고 있다. 

서울에 온 김일성은 용산 기지에서 머물고 있다. 춘천 전역의 북한군이 남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울 방면에서만 남진을 할 수가 없다. 전선이 불균형이 생기는 경우 측방에서의 공격에 약점이 생기게 된다. 김종오는 한국동란에서 김일성 군대에게 남진 36시간을 지체시켰다. 춘천방어는 개전 후 처음 맞는 승리다. 

김종오는 실력(지,智)이 있다. 고도의 판단력을 소유한 치밀한 전략가다. 전술에 있어 현장을 직접 뛰면서 현장지향형 전술을 마련한다.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을 사전에 관리한다. 부하들에게 사전 훈련을 통해 전장에서의 지혜를 터득하게 한다. 의무병과 장교들에게도 포술을 연마케 했다. 춘천에 소재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도움으로 포탄을 인력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

소신(신,信)있다. 방어형 전술은 약세의 전력임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음을 믿으며 부하들과 공감한다. 부하들과 같은 꿈을 꾼다. 여러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면 그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이미 현실화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인,仁)이 있다. 부인이 면회 온 것을 만나지 않고 돌려 보낸다. 부하들은 얼마나 가족을 만나고 싶을까를 생각하면 전선까지 찾아온 부인을 혼자만 만날 수 없다. 친화력이 남다르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근 지원부대장들에게 각별한 인사를 함으로서 화력의 지원 체계를 굳건히 다진다. 

용기(용,勇)가 있다. 참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안다. 현장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솔선수범의 용기를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엄격함(엄,嚴)이 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엄격함이 항상 있다. 

지,신,인,용,엄은 손자병법이 지향하는 최고의 장수가 가지는 덕목이다 김종오가 지닌 실력, 소신, 사랑, 용기와 엄격함이 오늘 새로운 가치로 다가 온다.. 백마고지는 스물 네 번이나 뺏기고 빼앗은 한국전 최대의 격전지다. 김종오는 백마고지에서 불후의 전공을 세운다.  백마고지가 보이는 곳에 김종오를 추모하는 기념관이 있다. 김종오는 오늘도 추모관의 창문을 통해 백마고지를 보고 있다.  

5.16군사 정권은 군의 영웅을 묻혀 두려고 했다. 무력 집권층 보다 더 신망을 가진 군인을 시기 한다.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향년 45세의 김종오의 장례는 조용조용 치려 졌다. CEO 김종오의 재발견으로 한국군의 군신으로 모셔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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