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내가 알고 지내는 한 일본인 하시모도 상 - 여호영

하동신문 0 398

내가 알고 지내는 한 일본인 하시모도 상

                                                                      여호영

 

내가 하시모도 상을 처음 만난 지 어언 30여년이 되어 간다. 일본인을 이렇게 오랫동안 사귀고 있다. 조금은 의외일 수 있을 것이다. 이분의 첫인상은 한국인과 흡사하다. 체격도 작은 편이다. 매우 건강해 보인다. 나이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굉장히 겸손하다. 긍정적이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과 관심이 많다. 나이를 먹으면서 알맞은 직업 분야로 점차 바꿔 타기를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오히려 장점이 될 만한 요소들을 활용한다. 

 

하시모도 상은 일본의 남쪽지방 미야자끼의 조그마한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일본군국주의 침략전쟁이 한참이던 1937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때 패전을 맞이했다. 미군정을 체험했다. 교오토 대학 천문학과에 입학했다. 칠팔 년 전 그 대학 교수인 유카와 히데키 교수가 일본 최초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시모도 상은 이 교수로부터 물리학 강의를 받은 것을 아직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는 기술사 제도가 있다. 학술계가 아닌 기술계에는 최고의 국가 자격인 기술사 제도가 있다. 이분은 사십 대 초반에 정보공학 기술사를 획득했다. 나와 첫 만남은 양국 기술사로서 양국간 교류를 위해서였다. 십여 년 전 나와 하시모도 상은 양국 기술사회장으로부터 동시에 또 같은 자리에서 각각 공로상을 받았다. 양국간 기술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80년대 초 하시모도 상은 한국의 데이터 통신 인프라 개척에 기여하였다. 그의 국제금융망에 대한 기술적 관리행정적 제안이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받아 들여 졌다. 

하시모도 상이 가지는 특징이 몇 가지 있다. 겸손 하다. 나이가 있음에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항상 같은 눈높이에서 상대를 대한다. 이번 5월초는 한일중 3국이 황금연휴를 가졌다. 연휴기간 중 일본에 간 김에 하시모토 상을 만났으면 했다. 그들은 이미 황금연휴 계획을 세워놓고 지방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하시모토 상은 그때 나의 만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의 부인은 계획을 바꿀 수가 없었다. 부부동반으로 만나길 원했지만 불가피하여 그 분 혼자 나왔다.  바쁜 일정임에도 함께 하면서 귀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사람의 일생은 한 분야에서 꾸준함과 사다리를 끊임없어 타고 올라가는 형상이다. 한 분야에 정통함은 물론이고,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균형감각이 뛰어 나다. 기술자로서 기술 밖에 모른다가 아니다. 초기 미군정은 패전일본을 사회주의적 나라로 만들어 강력한 신흥 국가출현을 방지하고자 했다고 한다. 중국대륙이 공산화되자 일본의 역할을 재평가하여 자본주의적 국가로 키우려고 원복(롤백)했다고 한다. 요즈음 한일간계가 얼어 붙어 있다는 점에 소견을 밝힌다. 정부 당국자간에는 그렇게 하더라도 민간레벨에서는 교류가 활발히 있어야 한다고 한다. 우의를 더욱 돈독히 다져 나가자고 한다. 요즈음 하시모도 상은 직업인들의 직업윤리에 대해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하시모토 상으로부터 배우고 싶은 점이 있다. 지속적인 관심사항 발굴하고 이를 파고 든다는 점이다. 연세가 여든셋 임에도 한국의 젊은이 못지 않다. 지금도 1인회사인 컨설팅회사(펌) 기술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운명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일을 함으로서 건강을 유지한다. 아직껏 잔병치레를 해본 적이 없다. 약간의 긴장과 부지런함이 건강을 지키는 비법이다. 결국 일을 하니 건강을 유지한다는 점을 이분은 나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은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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