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충의공 정기룡장군기념사업회」의 성공을 기원하며 - 문화원장 -

하동신문 0 104

「충의공 정기룡장군기념사업회」의 성공을 기원하며

 

- 문화원장 - 

 

최근 우리사회는 갈등과 분열이라는 어려운 환경 때문에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것 같아 국민들의 마음이 무겁다. 이런 가운데도 우리 하동에서는 지난 11월 1일 우리하동의 2천년 역사에 가장 뛰어난 인물인  충의공 정기룡장군의 얼과 기상을 되살려 더 큰 하동을 만들어가자며 “충의공정기룡장군 기념사업회“를 창립하여 내외군민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어 신선함을 느낀다.

늦었지만 지난 향토의 역사를 잊어서는 미래가 없다는 시대정신으로 장군의 현창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내외군민의 바램에 힘입어 꼭 성공하였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본 기념사업회(회장 정두규 예비역장군)는 장군의 뛰어난 공적에도  불구하고 역사기록은 이순신 장군을 앞세웠으며 우리국민들은 그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올해로 순국 395년을 맞고 있으며 장군의  묘소가 있는 경북 상주시 에서는 탄신 제향은 물론 대대적인 현창   사업을 펼치고 있으나 장군의 고향인 우리하동은 유림을 중심으로   뜻있는 분들이 향제를 지내고 사당인 경충사를 관리해오고 있는 미미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하동군의 적극적인 지원과 내외군민의 참여로 정관에 명시된 현창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하동의 향토역사,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하동의 역사 인물인 충의공 정기룡장군은 1562년 4월 24일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 상촌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임란 시 전선을 누비다   삼도수군통제사 재임 시 1622년 2월 28일 통영 진중에서 순직하셨으며 당시 조정에서는 장군에 대해 “정기룡장군이 없었다면 영남이 없을 것이고 영남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도 없을 것이다.”라고 평가 하였으며 흔히 장군을 “육지의 이순신. 임란의 맹호. 60전60승의명장. 역사가  잊어버린 불패의 장군”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알려지지도 않았으나 타이완의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장군의 전술전략을 육사교재로 활용하고 있더라며 예비역 장군이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또한 우리의 역사인물인 충의공 정기룡장군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장군이 순직하신지 150년이 흐른 1773년 영조(49년)가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임란직후 선무일등공신에 취품된 사람은 이순신과 권율, 원균 세 사람으로 공신록에도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제 우리 내외군민들이 하동의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정해진 것 같다. 장군의 기념사업회 창립 취지문에서 밝힌바와  같이 우리 하동의 2천년 역사에 전설적 인물인 장군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장군의 얼과 기상을 되살려 하동의 자랑과 긍지로 삼는 것은 물론 우리의 자랑스런 향토역사를 후세에 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데  힘과 지혜를 하나로 모아갔으면 한다. 아울러 장군의 얼과 흔적이   우리 하동은 물론 온 국민의 마음속에 기억되는 충절의 성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장군의 기념사업회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내외군민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을 기대해 본다.

최근 한국. 중국. 네덜란드 등 9개국 15개 시민단체. 기관이 공동으로 신청한 일본국 위안부 피해자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기록물로 세계기록유산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등재심사 소위원회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외교력과 자금줄 앞에서 무력하게“등재보류권고”판정을 받은 현실을 직시하여 장군의 우국충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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