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칼럼

코스모스 “나를 살사리 꽃이라 부르지말라” - 하아무/소설가.동화작가 09.24
이병주문학제 백일장 심사에 갔다. 올해는 신종플루 때문에 아이들이 직접 오지 않고 공모 형식으로 바꿨다. 쌓인 원고를 하나하나 읽으며 아이들의 생각에 빠져들었다.초중고별로 나눠 이루어지는 심사지만 심사위원들끼리 의견을 공유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자주 하게 되는 말. “고등부보다 중등부 글이 낫고, 중등부보다 초등부가 더 나은 것 같다.”나이를 먹을수록 자..
경계에 서서 洗耳암과 濯纓臺 - 최영욱(평사리문학관 관장) 09.17
지리산 잔돌평전에서 쏟아져 내린 물들이 토끼봉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을 합하여 큰 계곡을 이루는 하동군 화개면 신흥마을을 앞에다 둔 내(川) 한 가운데 바위에 해서로 세이암(洗耳암)이라 새겨져 있고 물길을 따라 좀 더 위로 오르면 역시 커다란 암벽에 탁영대(濯纓臺)라는 각자가 있다. 세이암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선생의 글이라 전해지는데 선..
비교 대상은 자신이다 09.10
 구한말에 조선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선교사를 훈련하면서 미국 강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에 가면 온돌방이라는 사각형의 방이 있는데, 항상 말석에 앉아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훈련생이 궁금하여 물었다. "상석, 말석은 어떻게 표시되어 있습니까?" 강사의 설명이 훌륭하다. "특별한 표시는 없는데 방문을 열면 맞은편이 상석이고, 상석의 좌..
가을을 맞으며 - 이현도(논설위원 / 언어학박사) 09.02
9월이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 풀밭을 스치면 이슬이 바짓가랭이를 적신다. 돌아오는 주초(週初)가 백로인데, 백로는 이슬을 아름다운 언어로 부르는 말이다. ‘하얀 이슬’이다. 가을기운이 완연하고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고 해서 백로라고 부른다. 짙푸른 녹차밭에 하얗고 야무진 차꽃이 툭툭 피어오르는 것도 이 때이다. 아침에 일어나 손에..
‘침묵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 하아무/소설가, 동화작가 08.28
“이번 주 원고 쓰시는 주인데요, 마감에 늦지 않게 부탁드려요.”맑은 여기자의 목소리 뒤로 딸꾹질하듯 전화 끊기는 소리가 들려왔다.하루를 보내고 이제야 책상 앞에 앉았다. 시각은 새벽 4시 45분. 달마다 문학관 파견작가 지원사업에 관한 보고서를 도서관협회에 제출해야 되어서 그것부터 하느라 이제야 원고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뭘 쓸까. 쓸거리가 잘 생각나..
절름발이 세상 - 최 영 욱(시인) 08.20
 자연은 어김이 없다. 엊그제 연두색으로 한바탕 잔치를 치른 봄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니 흘러갔다. 그 흘러감 위엔 온통 초록이다.  아무리 보아도 연두색보다는 강성하다. 물과 빛과 공기의 은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온갖 과실들이 열린다. 열려 맛과 향을 인간들에게로 나눈다. 나눔 또한 당연한 위치다. 그 바탕에는 자연이 있..
사장의 생각, 직원의 생각 08.13
두 직원이 회사가 교도소 보다 안 좋은 이유를 들먹이면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직원A; “교도소는 세끼 밥을 무료로 먹여 주는데 회사는 내 돈 주고 사먹어야 하잖아?” 직원B: “글쎄 말이야. 교도소에서는 가끔 TV를 볼 수 있는데 회사에서 TV 보면 바로 짤리지.” 직원A: “하루 종일 2평짜리 공간에 갇혀있는 건 교도소와 다를 바 없다니까.” 그 때 공..
기후변화에 대비를- 이현도 (논설위원 / 언어학박사) 08.06
나의 텃밭은 해발 600m인데, 올해에는 예전에 없던 변화가 일어났다. 풀밭에 진드기가 많아졌다. 밭을 갈 시간이 없어서 묽혀만 두었던 풀밭이 온통 진드기 투성이다. 풀어놓은 개가 온 산으로 돌아다니며 묻혀와 풀밭에 뿌린 것이겠지만, 진드기는 풀의 진액을 빨아먹고 있다가 짐승이든 사람이든 풀밭을 스치기만 하면 털이나 옷에 금방 달라붙는다. 달라붙은 진드기가..
삼가 뱀의 명복을 빌다 - 하아무/소설가, 동화작가 07.23
평사리 최참판댁 뒤에 있는 한옥체험관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지리산 맑은 공기도 실컷 마시고 황토방의 효과도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멈칫했다. 양변기에 제법 큰 지네 한 마리가 익사해 있었다. 지네는, 자기 동네에 커다란 한옥이 들어섰으니 관광차 들렀다가 횡액을 당한 것이..
장마, 그리고 섬진강- 최 영 욱(시인) 07.16
# 장면 1 밤새 퍼붓던 비는 서해량에서 오룡정까지 연결하다 채 완성되지 못한 강변둑 사이를 길을 삼아 마을로 짓쳐들기 시작한다. 이 거침없는 물길은 동해량 삼거리에서 찰랑거리나 싶더니 금새 정미소까지 위협한다. 저 고개를 넘으면, 만약 물길이 고개를 넘는다면 하동읍 시가지는 일시에 물바다가 될 터, 다행이 거침이 없던 물길은 고개(한목) 아래에서 찰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