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병주의 희곡 ‘유맹’ 발견

하동신문 0 31

작가 이병주의 희곡 ‘유맹’ 발견 

 

1959년 잡지 「文學」 11월, 12월호에 각각 상·중편 발표

하편은 「文學」 폐간으로 실리지 못함 

일제강점기 중국 상해가 배경

 

 

최근 최증수 전 이병주문학관장이 소장하고 있는 1959년 잡지 「文學」 11월, 12월호에 이병주 작가가 해방직후 쓴 희곡 ‘유맹’이 발견돼 이병주 희곡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할용 될 것으로 보인다.

‘유맹은 1959년 잡지 「文學」11월호와 12월호에 각각 상편과 중편으로 나뉘어 실린 것으로 작품 전체의 2/3에 해당한다. 

그해 12월호로 「文學」이 폐간되면서 하편은 실리지 못했다.

‘유맹’은 이병주가 1945면 9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중국 상해에 머무르며 쓴 것으로 보인다. ‘해방 직후 상해에서 쓴 작품인데 그대로 버리기엔 아깝다는 친구의 권유에 의해 발표한다.’는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병주는 1944년 학병으로 뽑혀 중국 소주 치중대에 배속됐고, 해방 이후에도 6개월 더 중국에 머물다 1946년 3월 부산으로 귀국했다. 

‘유맹’의 배경은 1937년 상해 외국인 공동거류지이다. 

백계(1917년 러시아 혁명을 반대한 세력) 러시아인이 경영하는 하숙집에서 하숙생, 항일 중국인, 일본 헌병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며 조국 재건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그린다.

이병주 작가는 1965년 ‘세대’에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이유로 ‘소설 알렉산드리아’ 이 전의 작품과 문학 활동은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을 보면 이병주작가는 국제신문(당시 국제신보)주필로 활동하던 1957~1958년 부산일보에 소설 ‘내일 없는 그날’을 연재했고, 1959년 ‘유맹’과 같은 희곡도 썼다.

‘유맹’의 발굴로 소설가로 활동하기 전에 이미 희곡을 창작 했으니 이병주의 첫 문학 활동 이었다고 볼 수 있다.

희곡·연극에 대한 활동은 1949년 10월 진주 농대의 개교 1주년 기념식에서 연극 ‘살로메’를 연출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데, 앞으로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유맹’ 하편을 찾는 일이 중요하고, 상·중·하 모두를 읽는 감격을 통해 이병주의 희곡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시작 되었으면 한다.

「文學」의 발행인은 당시 전국문화단체 총연합회 부산지부장인 정상구씨로 혜화중고등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시인, 문학평론가, 잡지발행인, 수필가, 정치가 등으로 활동 했으며 1958년 「新潮文學」, 1959년 「文學」을 발간했다.

작가 정범준은 이병주 전기를 기록한「작가의 탄생」 (2009년 실크캐슬)PP.147〜149에서 국립도서관과 국회 도서관에서 찾은 「文學」을 바탕으로 처녀작 희곡 ‘유맹’이란 소제목으로 이병주의 희곡 ‘유맹(流氓)-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文學」 1959년 11월호에 상편, 12월호에 중편이 연재 되었으나 하편은 찾을 수 없다고 하면서 2막 2장까지의 내용과 주인공 등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잡지 「文學」은 부산대 국어교육학과 이순욱 교수도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부산대 민병욱 교수가 ‘유맹’을 연구하여 올해 1월에 발표한 ‘부산희곡문학의 재발견’에서 그 내용을 자세히 발표 했다. /공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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